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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동인도회사와 아시아의 바다
번 호
  33
등록일
  2012-08-02 14:17:37
글쓴이
  김철민기자
한국해양대 국제해양문제연구소, 번역서 두 권 출간



1. 동인도회사와 아시아의 바다

◎ 서지 사항

- 출 판 사 : 선인출판사
- 간행일 및 쪽수 : 2012년 6월 30일 / 약 357쪽
- 저 자 : 하네다 마사시(羽田 正)
- 역 자 : 이 수 열 (한국해양대학교 국제해양문제연구소 HK교수)
구 지 영 (한국해양대학교 국제해양문제연구소 HK연구교수)

◎ 저자 소개

- 1953년 오사카 출생. 교토대학 문학부를 졸업하고, 파리 제3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교토다치바나여자대학 조교수, 케임브리지대학 객원연구원을 거쳐 현재 도쿄대학 동양문화연구소 교수와 도쿄대학 부학장을 겸하고 있다.

- 세부전공은 비교역사학과 세계사. 대표저서는『모스크가 말하는 이슬람史-건축과 정치권력』(モスクが語るイスラム史ー建築と政治権力)(1994), 『이슬람 세계의 창조』(イスラーム世界の創造)(2005), 『모험상인 샤르단』(冒険商人シャルダン)(2010), 『새로운 세계사로-지구시민을 위한 구상』(新しい世界史へー地球市民のための構想)(2011).

- 『이슬람 세계의 창조』로 2005년 제18회 아시아태평양 특별상과 제4회 파라비국제상(이란정부 주최의 인문학상)을 수상.

◎ 책 소개

이 책은 2007년 일본의 한 출판사가 창사 100주년을 기념하여 기획한 시리즈 ‘흥망의 세계사’(講談社, 전21권)의 한 권으로 출간된 작품이다. 기획 취지로 미루어보아 출판사는 아시아의 역사뿐 아니라 세계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동인도회사의 ‘흥망’의 역사를 독자들에게 전달하고자 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하지만, 하네다 마사시는 이 책에서 그러한 출판사의 기획 의도를 넘어 일체화된 세계와 총체적인 유라시아 역사를 그려내는 데 성공하고 있다.

지금까지 동인도회사에 관한 연구는 몇몇 연구를 제외하고 대부분 유럽 세력에 의한 아시아 지배라는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여기서 아시아는 단지 지배의 대상에 불과했던 것이다. 물론 서구 지배에 대한 반동으로서 아시아 국가들의 내셔널리즘의 발흥을 이야기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러한 것들은 광의의 ‘유럽사’ 혹은 ‘유럽 팽창사’의 식민지 버전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동인도회사를 아시아의 바다에 뒤늦게 출현해, 그곳을 지배하고 있던 자유무역 원리를 파괴하고 독점적인 세력권을 구축하고자 했던 상인집단의 하나로 묘사하고 있다. 400년 전 아시아의 해역세계에 그 모습을 드러낸 동인도회사는 어떤 의미에서도 자기완결적인 주체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들이 아시아에 출몰하게 된 이유도 값싸고 질이 좋은 아시아 상품을 입수하기 위해서였다.

동인도회사와 아시아의 바다를 이처럼 묘사하는 일은 그 자체로 지금까지의 유럽중심주의적 역사상에 대한 문제제기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북서유럽 국가들이 근대의 ‘주인공’으로 등장하게 되는 이유에 대해서 그것이 결코 지리적 의미의 유럽과 유럽인의 힘에 의해서만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동인도회사가 운반한 아시아의 상품과 아메리카대륙의 은이 가져온 역사적 결과라고 설명하고 있다. 근대 유럽을 “세계의 다양한 사람들의 활동이 하나가 되어 탄생시킨 세계전체의 자식”으로 자리매김하는 저자의 문제관심은 유럽중심주의도 아시아중심주의도 아닌, 사람과 상품의 이동이 만들어낸 ‘일체화된 세계의 역사’에 있을 뿐이다.

유럽중심주의의 극복과 함께 이 책을 관통하는 또 하나의 문제의식은 내셔널 히스토리의 상대화이다. 시기적으로도 근대 주권국가 성립이후에 한정되어 있고 각 인간집단의 차이를 지적하는데 익숙한 국민국가 단위의 역사서술에서 벗어나, 사람의 이동과 상품유통에 주목하면서 세계사를 바라보는 것이 바로 저자의 입각점이다. 또한 저자는 내셔널 히스토리를 지양하고 일체화된 세계를 그리기 위해 시계열적 역사 서술을 전략적으로 포기하고 횡적인 관계성과 상관성에 주목한다. 이 같은 입장이 국가와 문명의 대립으로 얼룩져 있는 현대 세계에 대한 저자 나름의 실천적 응답이라고 생각한다. 독자들은 유라시아대륙 전역에서 일어났던 다양한 사람, 상품, 사상의 이동을 통해 횡으로 연결된 400년 전의 세계를 구체적인 이미지를 갖고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역자후기 중에서>

◎ 책 속에서

- 전 세계 사람들은 일반적인 세계사가 설명하는 것만큼 별개의 동떨어진 역사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일국사의 집합이 아니라 세계를 단위로 한 새로운 세계사를 쓸 수는 없을까? ・・・모두가 같은 역사를 갖고 있다면 상호간의 오해와 분쟁은 줄어들 것이다. 현대 세계에는 새로운 세계사가 필요하다. 이런 점들을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 같은 생각으로 내가 처음 도전한 것은, 세계 각지를 횡적으로 잇고 사람, 물자, 정보를 키워드로 해서 교류의 실태를 그리는 일이었다. 바다를 무대로 한 역사 서술은 그 양상을 드러내는 견본이 될 수 있다. <한국어판 서문(12-13쪽) 중에서>

- 이 책에서 시도하는 것은 사람과 물자의 관계에 주목하면서 과거 세계를 바라보는 일이다. 적어도 사람의 이동과 상품 유통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17세기 초 남반구의 일부와 북극권을 제외한 대부분의 세계는 이미 하나로 연결되어 있었다. ・・・아프리카와 신대륙을 포함한 세계 전체가 상품유통과 사람의 이동으로 인해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지구가 인류사상 처음으로 일체화한 것은 16세기 들어서의 일이다. ・・・오늘날 되돌아보면 이 시기의 사람과 물자에 의한 지구의 일체화야말로 그 뒤의 세계사의 흐름을 결정한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이 책은 ‘동인도회사’의 흥망을 통해 17~18세기 세계 전체의 변화를 그리려고 하는 매우 대담한 시도이다. 지난 100년 동안 역사의 기본 틀로 작용해온 일본사, 동양사, 서양사라는 세 가지 학문분야를 뛰어넘어 ‘세계’를 상대로 하지 않으면 이 책이 커버하려는 영역을 다룰 수 없다. 지금까지의 연구는 주로 유럽 각국의 동인도회사를 단위로 하여 아시아 각 나라에서의 동인도회사의 활동에 대해 검토해왔다. 하지만 이것을 종합하여 일관된 시점에서 재구성하지 않으면 200년 동안의 역사는 서술할 수 없을 것이다. ・・・사람과 물자에 의한 지구의 일체화를 실현한 것은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뱃사람들이었다. 한편 이 책이 취급하는 시대에는 아시아의 바다가 세계 상품유통의 중심이었다는 사실도 강조해두자. ・・・극단적으로 말해서 아시아의 바다야말로 세계의 중심이었던 것이다. <들어가며(15~28쪽) 중에서>

- 동인도회사처럼 다면적인 성격을 가지고 역사적 평가 또한 어려운 조직도 드물다. 같은 아시아 내에서도 장소에 따라 그 활동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전혀 다르다. 남아시아와 동남아시아의 많은 지역은 동인도회사를 유럽 국가의 식민지화의 첨병이며 때때로 잔학한 정복자로 기억하고 있다. 많은 중국인들은 중국에 아편을 갖고 들어와 아편전쟁의 계기를 제공한 악랄한 상사로 동인도회사를 이해하고 있다. 이러한 부정적인 의견과는 대조적으로 일본에서는 긍정적으로, 즉 유럽의 선진문화를 가져다준 순종적이고 친절한 상인들의 회사로 평가되고 있다. 지금까지 책에서 보아온 것처럼 이런 모든 견해는 무역을 통해 이익을 얻으려는 목적에서 지역에 따라 여러 가지 수단을 동원한 회사의 다면적 얼굴의 한 단면이다. <나오며(319~322) 중에서>

- 이 책에서 강조하고 싶었던 점 중 하나는 18세기 이전 유라시아의 국가 형태, 즉 정치권력과 통치하의 사람들과의 관계의 다양성이다. ・・・인도양 해역 연안과 동남아시아의 왕권은 영역보다는 인간을 지배하려 했다. 정치권력이 영역이 아니라 사람을 지배하는 이상, 인적인 의미에서 ‘안’과 ‘밖’의 구별은 없었다. 설사 바다 건너편에서 온 사람이라 할지라도 자신에게 복종하고 경제적・군사적으로 공헌하는 바가 있으면 그 사람을 신하로서 대우하고 직업을 부여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인도나 페르시아의 정치권력이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의 동인도회사에서 파격적인 대우를 한 것도 인간집단으로서의 동인도회사가 현지 정권에게 공헌을 했든지 아니면 앞으로 할 것을 기대했기 때문이었다. ・・・인도양 해역과 동남아시아에서의 이슬람교 확대와 그 역할에 대해서도 언급해두자. 다양한 인간 집단이 서로 중층적으로 뒤섞여 있는 지역사회를 통치하는 정치권력에게 이슬람교는 통치의 정당성을 보증하기 위한 최고의 종교였다. 알라는 지연, 혈연, 직업, 민족적 출자 등 모든 속성을 초월하는 보편적인 성격을 지닌 유일신이었기 때문이다. 무슬림이 된 정치적 지배자는 이슬람교의 이념을 내걸고 통치함으로써 다원적이고 복잡한 인간집단을 초월하는 권력을 획득할 수 있었다. <나오며(323~327쪽) 중에서>

- 몇 번이나 강조하지만 근대 유럽은 결코 지리적인 의미의 유럽과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힘만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동인도회사가 운반한 아시아의 산물과 아메리카의 은이 유럽에게 풍요로움을 가져다주었다. 뛰어난 아시아의 제품을 목표로 기술혁신이 일어났다. 아시아, 아프리카, 아메리카, 오세아니아 등지에서 인간, 사회, 환경에 관한 방대한 양의 지식을 획득한 북서유럽 사람들은 그 지식을 활용하여 자신들의 정치기구와 사회제도를 재고하고 쇄신했다. 크리스트교라는 틀을 뛰어넘는 새로운 세계관과 자기인식을 발견하고 과학기술과 학문을 비약적으로 발전시켰다. 이처럼 유럽 이외의 지역이 존재하지 않았더라면 근대 유럽은 결코 탄생하지 못했다. 근대 유럽은 일체화된 세계 사람들의 다양한 활동이 총체적으로 탄생시킨 세계 전체의 자식인 셈이다. <나오며(328~329) 중에서>

◎ 국제해양문제연구소의 ‘해항도시 문화교섭학’과 본서의 출간 의의

한국해양대학교 국제해양문제연구소가 인문한국사업(HK)으로 추진하고 있는 ‘해항도시 문화교섭학’ 연구는 해항도시를 무대로 한 다양한 사람들의 교류와 그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문화접촉・변용・창조의 양상에 대해 규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것은 국민국가라는 분석단위를 넘어서 해항도시가 구성하는 네트워크, 사람과 물자의 이동, 다양성의 공존 속에서 ‘해항도시성’을 도출해 내어, 지구화로 인한 경계를 넘는 이동이 가속화되는 오늘날에 새로운 공생의 패러다임을 제시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 책은 이 연구의 일환으로 번역된 것이다. 저자가 시도하고 있는 새로운 세계사 서술은 본 연구소가 추진하고 있는 연구의 방향성과 일맥상통하며, 따라서 이 책은 ‘해항도시 문화교섭학’의 하나의 사례연구로 자리매김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의 무대가 되는 400년 전의 세계가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작지 않은 만큼, 일반인의 교양서로서도 충분히 주목받을 가치가 있다고 본다.


2. 한자

◎ 서지 사항

- 출 판 사 : 선인출판사
- 간행일 및 쪽수 : 2012년 6월 30일 / 약 170쪽
- 저 자 : 롤프 하멜-키조 (Rolf Hammel-Kiewsow)
- 역 자 : 박민수 (한국해양대학교 국제해양문제연구소 HK교수)
조현천 (제주대학교 독일문화학과 교수)

◎ 저자 소개

1949년 독일 슈트트가르트 출생으로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하여 박사학위 취득. 1993년 이래로 ‘한자와 발트해 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으며 독일 키일(Kiel) 역사학과의 객원교수이자 한자 학회의 회장도 겸하고 있다.

◎ 한자의 간략한 소개

한자는 저지독일(북부독일) 상인들과 도시들이 동맹법규에 근거해서 조직한 상대적으로 개방적인 이해 공동체였다. 12세기에서 17세기까지 약 500년 간 지속된 한자는 14세기 말 이후 상인들이 시민권을 갖고 있는 70개 대도시와 100~130개 중소도시들의 조직이 되었다.

한자의 교역범위는 발트해와 북해를 포괄했으며, 한자에 속한 도시들 중에서도 해항도시들이 그 정치적ㆍ경제적 중요성을 지속적으로 증대시켜 나갔다. 그 까닭은 한자의 핵심이 바다 건너 도시들에서 특권과 상관을 획득하는 해상교역에 놓여 있었다는 데 있다. 한자의 도시 네트워크에서는 국경을 초월한 해항도시 간의 네트워크가 주축이 되었고, 각 해항도시들은 내륙 도시들과 육로를 통해 연결되었다. 한자의 해항도시에서는 하적의무와 상품검사체제가 도입되었고, 해상운송과 육상운송을 위한 사회기반과 이를 연결하는 사회기반이 조성되었다.

한자가 지속된 12세기에서 17세기까지 약 500년 동안 유럽의 정치ㆍ경제 체제는 지속적으로 변화했다. 롤프 하멜-키조의 『한자』는 한자의 해항도시들이 이 과정에서 유연하게 자신들의 목표를 추구해 갔던 과정을 추적하고 있다.

◎ 국제해양문제연구소의 ‘해항도시 문화교섭학’과 본서 출간의 의의

한국해양대학교의 국제해양문제연구소가 인문한국 사업으로 진행 중인 ‘해항도시 문화교섭학’ 연구는 국가와 민족이라는 분석 단위를 넘어서 해항도시가 구성하는 해역이라는 일정 공간을 상정하고 그 해역에서의 문화 생성, 전파, 접촉, 변용에 주목하면서 문화교섭의 총체적 양상을 복안적이고 종합적인 견지에서 해명하고자 하는 시도이다.

금번 국제해양문제연구소에 소속되어 있거나 소속되었던 두 명의 연구자에 의해 롤프 하멜-키조의 『한자』가 번역ㆍ출간된 것도 ‘해항도시 문화교섭학’ 연구의 일환에서 수행된 작업의 결과이다. 본 연구소에서는 중세 한자의 핵심을 해항도시들의 네트워크라 보고 있으며, 이 역사적 현상에서 해항도시의 다층적 문화교섭 현상을 읽어낼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 좀 더 자세한 도서 소개

중세 유럽에는 이탈리아를 비롯한 다른 유럽지역에도 다양한 도시나 지역 연합체가 존재했다. 하지만 그 지속성이나 규모 면에서 한자를 능가할 만한 것은 없었기에 이 독특한 현상은 서양 중세사 연구에서 각별한 주목을 받곤 했다. 물론 한자는 독일인들이 주축이 되어 결성한 조직이었기에 그에 대한 연구도 독일학자들에 의해 주도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이로 인해 한때는 한자 및 한자연구에 부정적 이미지가 심어지기도 했다. 19세기 중반 이후 본격화된 한자 연구는 19세기 말~20세기 초 빌헬름 시대의 분위기 속에서 제국주의 관점의 지배를 받았고 - ‘야만적 동유럽인들에게 문명의 시혜를 베푼 한자 독일인들!’ - 파시즘 시대에는 이런 관점이 더욱 강화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황색 이데올로기는 전후 독일 역사학계의 한자 연구에서 서서히 씻겨 나갔지만 70년대까지도 완전히는 청산되지 않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의 한자연구에서는 본질적인 변화가 나타나는데, 예컨대 독일사가 아닌 유럽사의 맥락에서 한자에 접근하려는 경향, 고고학이나 도시학, 도상학, 동전학 등 인접학문과 연계하여 이 대상을 다루려는 경향 그리고 한자에 대한 러시아나 포르투갈 등 외부의 문화적 영향도 검토하려는 경향이 그런 변화에 속한다. 이런 변화를 주도한 인물은 한자연구의 거목이라 할 수 있는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대학의 사학자 필립 돌랑제였으며, 1964년 출간된 그의 대저 『한자 La Hanse』는 한자 연구의 집대성이라 불릴 만하고 아직까지 이에 필적할 만한 저작이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만 이 저작은 초판이 출간되고 거의 반세기가 지났기에 한자 연구에서의 새로운 인식을 전혀 반영하고 있지 못하다는 흠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돌랑제 이후의 한자연구는 개별도시의 건축구조나 주요 법제, 특정 사회현상(한자의 지도층, 한자 도시민의 죽음관, 한자 도시의 하층민 등) 혹은 지역별 계량법이나 지불방식 등의 거래양태 같은 세부사항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었고, 전체적 조망을 담고 있는 학술서는 그동안 전무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새로운 세대의 역사가에 의해 집필되고 한자연구의 새로운 인식을 담은 개론서로 환영받은 저작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롤프 하멜-키조의 『한자』이다. 물론 이 책은 독일의 C. H. 베크 출판사가 간행하는 입문서 시리즈 ‘베크셰 라이에(Beck’sche Reihe)’의 하나로 출간된 것이며, 따라서 본격적 연구서라 불리기에는 부족한 점이 없지 않다. 일단 분량도 적은 편이고 각주를 통해 인용 내지 참고 사항을 충실히 밝히는 학술서의 관례도 따르고 있지 않다. 하지만 이 책은 적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 혹은 그 분량에 걸맞게 세세한 각론으로 빠지지 않기에 - 한자에 대한 상당히 일목요연하고 체계적인 개관을 제공한다. 또한 저자는 말미의 문헌목록에서 참고한 논저들을 충실히 소개하고 있기에, 여기서 독자는 최신 문헌에 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 뿐 아니라 하멜-키조의 이 저작이 최근 연구 성과를 적극적으로 반영한 것임도 확인하게 된다.

하멜-키조의 『한자』는 4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중 1장은 머리말에 해당한다. 이 머리말에서 저자는 무엇보다 한자를 유럽적 조직으로 해석하고 현재적 시각에서 - 세계화! - 지나치게 긍정적 의미를 부여하려는 유행적 경향에 일침을 가한다. 물론 이러한 경향은 황색 이데올로기를 청산하려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형성된 것이고 일정 부분 전후 한자연구 경향 - 유럽사적 맥락에서의 고찰 - 의 부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좀 더 거시적인 맥락에서 한자라는 대상을 고찰하는 것과 이 조직 자체를 유럽인들의 공동 산물로 해석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며, 또 현재의 관심사나 소망을 역사해석에 지나치게 투영하는 것은 오류라는 것이 이 책에서 읽어낼 수 있는 저자의 기본입장이다. 사실 한자도시들은 거의 모두가 독일민족의 신성로마제국과 독일기사단 영토에 있었다. 이 두 지역에 있지 않은 한자도시는 오늘날 폴란드에 속하는 도시 크라카우와 고틀란드 섬의 비스비 그리고 스웨덴의 스톡홀름 정도였다. 게다가 저자가 분명하게 강조하듯, 한자 가입에는 오로지 저지독일 상인들과 이 상인들이 지도적 위치에 있던 도시들만이 허용되었다. 따라서 한자라는 현상에서 그 어떤 국제적 특징을 찾을 수 있다면, 그것은 조직 자체의 성격이 아니라 이들의 활동 영역이 유럽의 넓은 지역에 걸쳐 있었다는 점, 즉 이들이 노브고로트-라벨-뤼베크-함부르크-브뤼주-런던이라는 기다란 축을 중심으로 광대한 무역망을 형성했다는 점뿐이라는 것이 머리말에서 부각되는 저자의 생각이다.

『한자』의 나머지 3개 장의 제목은 모두 물음의 형태를 띠고 있다. 즉 2, 3, 4장의 제목은 각기 “한자는 어떻게 생겨났나?”, “한자는 어떤 조직성을 가졌나?” 그리고 “몰락인가 이행인가? 한자 해체의 원인”이다. 첫 번째 물음에 대한 답변은 세 가지 요인에서 모색된다. 그 요인이란 11세기 이후 유럽 무역망으로 발트해 지역의 편입, 12세기 이후 가속화된 인구증가와 경제생활의 비약적 발전, 그리고 유럽에서의 도시발전과 그 기능적 확대를 말한다. 제3장에서 하멜-키조의 관심은 한자의 조직형태와 기능방식 및 여러 가지 규범과 관습에 집중되는데, 이에 관한 논의에서 저자는 - 그 자신이 분명히 밝히듯 - 에른스트 피츠의 한자 법제 연구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마지막 4장에서 한자 해체의 원인은 15~16세기 유럽의 경제적 상황변화와 국민국가 등장에 의한 정치변동에 적응하지 못한 한자의 한계에서 탐색된다. 이때 한자의 해체는 몰락과 이행 사이의 양자택일로 규정될 수 없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한자라는 조직 자체는 와해되었지만, 여기 속해 있던 도시들 중 다수는 근대 초까지 꾸준한 경제적 성장을 거두었고 발트해 공간에서의 무역 역시 결코 쇠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내용을 지닌 2~4장에서 독자가 확인할 수 있는 저자의 기본테제는 이런 것이다. 한자는 철저히 영리를 추구하는 상인집단과 이들이 지배적 힘을 행사한 도시들의 결사였지 대의명분에 따르는 조직체가 아니었다. 한자는 시종일관 느슨한 무역연합으로 머물렀을 뿐, 엄격한 체계를 갖춘 경제적ㆍ정치적 동맹으로 발전한 적도 없다(그리고 바로 이 점이 한자 해체의 한 가지 원인이기도 하다). 한자에 속했던 개개의 상인집단이나 도시는 철저히 자신의 이익을 추구했고 이것이 위기에 처할 때만 다른 집단 내지 도시와 힘을 합쳤으며, 다른 도시에서 발생하곤 했던 정치ㆍ경제적 소요에는 가급적 개입하려 하지 않았다. 비용과 노력이 소모되는 그런 개입이나 전쟁은 - 자신의 이익이 위태로운 경우가 아니라면 - 기피의 대상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한자에서는 이른바 ‘상인한자에서 도시한자로’라는 발전노선이 뚜렷하게 그려지지 않는다. 이러한 관점은 돌랑제와 그의 영향을 받은 한자연구에 분명한 거리를 두는 것이기도 하다. 돌랑제에게서는 초기의 상인한자와 중후기의 도시한자를 분명하게 구분하는 경향이 분명하게 발견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멜-키조에 의하면, 한자는 - 덴마크 왕과 겨룰 만큼 커다란 영향력을 획득한 적은 있지만 - 긴밀한 도시동맹이나 준국가적 조직으로 발전한 적이 없다.

국내 사학계에서는 부산대에서 후학을 가르쳤던 곽정섭 교수의 논저들이 거의 유일한 한자 연구물들이라 할 수 있다. 곽정섭 교수는 「도시 한자의 구조에 관한 고찰」(1978)을 필두로 『독일 도시한자에 관한 연구』(1989; 부산대 박사학위논문)를 비롯한 다수 논저를 2002년까지 꾸준히 양산하여 국내 한자연구의 명맥을 성실히 이어나갔다. 그런데 곽정섭 교수의 저작들은 20세기 중반까지의 문헌들에 주로 의존하고 있으며, 특히 돌랑제의 관점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이 문외한인 필자의 생각이다. 이런 점을 볼 때, 국내의 한자연구에서 곽정섭 교수의 업적은 여전히 독보적이지만 이제는 새로운 관점과 서술에 의해 보완될 때도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그리고 새로운 관점과 서술을 제공할 수 있는 하멜-키조의 『한자』가 국내에 번역ㆍ소개된 것은 의의 있는 일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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