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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정주영 ( 나의삶 나의 이상)
번 호
  8
등록일
  2006-01-20 23:18:15
글쓴이
  관리자
미래를 위한 울산조선소 착공

법률, 풍속, 기후 등이 다른 나라에서 건설 공사를 하며 겪은 갖가지 해외공사에서의 곤란은 앉아 한담(閑談)으로 하면 그저 애기에 지나지 않지만 실제로 부딪치면 여간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국내에서 뭔가 큰 일을 할 것은 없나...

기업하는 이는 항상 보다 새로운 일보다 큰 일을 원하는법, 큰 일이 없으면 맥이 풀려 잠밖에 오는 것이 없다.

기업가는 자신이 일으킨 기업이 자신이 존재하지 않아도 계속 영원히 존재하길 바란다. 그런 소망 속에서 큰일의 하나로 잡은 것이 조선소(造船所)였다.

기업인이 새로운 일을 만들 때 꼭 짚어야 하는 것은 첫째 원료 조달이 어렵지 않아야 하고, 둘째 생산 공정이 단순해야 하고, 셋째 판로개척이 어렵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다.

내가 큰일을 선택한 조선은 당시는 불행하게도 이 조건을 구비하고 있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조선을 선택한 이유가 있었다.

첫째, 조선은 리스크가 큰 업종이긴 하나 많은 이들에게 직장을 제공할 수 있고 많은 연관 산업을 일으킬 수 있는 종합 기계공업이기 때문에 국민 경제적 입장에서 꼭 필요했다.

둘째, 우리는 외화가 필요했다. 현대건설이 해외 진출로 외화를 벌어들이기는 하지만 리스크가 너무 큰 데 비해 규모는 작았다.

조선을 해서 국내에 앉아 규모 큰 달러 계약을 하자

마침 정부도 조선, 제철, 주물등 4대 공장 건설에 박차를 가하는 시기였고 당시 김학렬 부총리는 이미 시작된 제철에서 생산한 철을 대량으로 소비해 줄 사업으로 조선소 건설을 권유하다 못해 성화가 대단했다.

정부에서 중화학 공업 선언 후 여러 회사에 실수요자 선정을 시도하다 현대를 선정했다는 근거 없는 세론(世論)도 있었지만, 밝혀둘 것은 자체 경영 전략상 나는 이미 훨씬 전부터 조선을 생각하고 있었다.

밥풀 한 알만한 근거라도 있으면 그것을 시발점으로 점점 크게, 더욱 큰 것으로 확대시키는 것이 '나'라는 사람의 특기이다.

"현대건설은 종합 건설회사다. 기계, 전기 기술자도 있고 건축 기술도 있으니까 조선소를 만들어 보자. 외국 배 만드는 것도 건설 공사 못지 않다. 몇천만 달러, 몇억 달러짜리 배를 수주해 국내 조선소에서 우리 기술로 건조하면 해외 건설보다 안전하다." 내 결심은 확고했다.

그러나 백이면 백 사람이 약속이나 한 듯 반대를 합창했다. 한사람도 내 편이 없었다.

몇백 톤짜리 나무 배만 만들던 우리나라에서 더구나 건설만 하던 우리 현대가 대양(大洋)을 항해하는 선박을 과연 만들 수 있겠는가 였다. 내 생각은 달랐다.

우리는 아주 정밀한 기술을 요구하는 원자력 (原子力) 발전소도 건설 했었다. 큰 철 탱크 속 엔진실에 터빈 화력발전소를 집어넣는 일이었다. 어렵게 생각하면 한없이 어려운 일이나 쉽게 여기면 또 한없이 쉬운 일이다.

조선이라서 공장 짓는 것과 다를 바 뭐 있나.....

철판 잘라 용접하고 엔진 올려놓고 하는 일인데 '모두 우리가 건설 현장에서 하던 일이고 하는 일 아닌가' 하는 식의 건설업자적 발상으로 내 생각은 다른 사람들과 달랐다.

'60년대 후반, 우리의 외화 고갈은 심각한 상태였다. 외국에서 돈을 빌려야 했다. 먼저 조선소 건설 차관과 기술을 일본에 요청했다. 내가 겨냥한 것은 미쓰비시 (三菱)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일본. 중국의 국교 정상화 기본원칙인 주은래 (周恩來) 4원칙에 걸려 미쓰비시와의 합작 시도는 무산됐다.
주은래 4원칙 중에 한국에 투자한 기업은 일체 중국 대륙에 발을 들여 놓을 수 없다는 금지 조항이 있었는데, 중국 대륙 진출을 목표로 하고 있던 미쓰비시가 동경에서 회의를 열기로 날짜까지 잡아놓고 유산시킨 것이다.

일본 통산성이 또 하나의 제동을 걸기도 했다.

우리의 합작 제의에 관계관들을 파견, 타당성 조사를 시킨 그들은 조사 결과, 우리의 기술이 아직 유치한 단계를 벗어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시장성을 고려할 때 최고 건조 능력 5만 톤에 불과하기 때문에 20만 톤급 이상의 대형 선박 건조는 불가능하다는 보고서를 받은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우리가 일본 통산성의 결론에 따라 서둘렀으면 우리의 건조 능력은 5만 톤 이하로 묶일 뻔했고, 주은래 4원칙이 없었다면 미쓰비시와의 합작으로 한국 조선공업이 우리만의 것으로 독자성을 띤 채 발전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쳤을 것이다.

'69년 10월, 이스라엘과 노르웨이 회사들과 합작 투자를 제의해 보았다. 그들은 타당성은 인정했으나 합작 조건이 50대 50이었다. 노르웨이는 기술 제공을 하고 이스라엘의 메나도 상인은 3천만 달러짜리 유조선 30척을 책임지고 판매해서 척당 1백만 달러의 순이익을 보장하는 대신 모든 자재 구매권을 달라고 했다.

정부에서는 우리에게 그 제의르 받아들이라고 권유했다. 나는 한 마디로 거절했다.

조선소의 모든 자재 구매권을 외국인에게 넘겨주려면 정신 나갔다고 조선소를 짓나, 오히려 나는 몇 차례 절충 과정에서 합작 투자 방침을 포기해야 겠다는 쪽으로 기울어지고 있던 때였다

방침을 수정했다.

장기 저리 차관 도입으로 독자적인 건설, 독자적인 운영을 한다는 결심으로 차관과 기술 도입선을 유럽쪽에서 구해 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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