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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해옹 배순태회장 1주기 추모 및 제막식행사/비문에‘백절불굴 철석정신’해운사 큰 족적 남겨

흥해 임직원 유가족 종친회대표 지인등 100여명
김종길 전 부산지방청장 추도사 생전 업적재조명

(사진설명: 미망인 이영희여사와 장남 배동진 흥해 사장,딸 배양숙씨가 제막식에 참석했다)

인천항 도선사 출신의 故(고)해옹 배순태회장의 1주기 추모 및 묘비 제막식이 경남 창녕군 부곡면 선산에서 유가족과 종친회 대표 한국해대 관계자 지인등 약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김종길 전 부산지방청장의 추도사로 행사를 시작했다.

사회자의 진행으로 고인에 대한 묵념과 지난해 4월11일 영면한 해옹 배순태도선사의 약력 소개를 인천 평택항 예선업체인 흥해의 박관복 부사장이 소개했다. 미망인 이영희여사와 장남 배동진사장, 차남 배승진 성균관대교수, 자부 손자 손녀등 지인등이 참석 한가운데 김종길 전부산청장은 추도사에서 “광복직후 해기사 초년병 때 금천호에 게양했던 일장기를 내리고 태극기를 게양하는 역사적 임무를 수행하고 동해호 선장으로 오대양육대주를 횡단하는 등 파나마 수에즈운하 통과등 한국의 마젤란이 되었다”고 엄숙하게 읽어 내려갔다.

또 인천항 도선사 근무 당시“갑문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34년간 도선업무로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동료들이 기피하는 도선 업무를 수행해 위기를 극복한 사례가 지금도 유명한일화로 남아 있다”고 밝혔다. 특히 추도사에서 지난해 연말 고인의 생전 유지를 받들어 장남 배동진 대표가 ‘해봉 배순태상’을 제정하여 세계 바다 대통령 임기택 사무총장에게 수여하고 5월31일 바다의 날 기념으로 부산항 태종대 ‘해기사 명예의 전당’에 선정 됐다. 오는 5월24일 한국해기사협회 주관으로 유가족과 부산청장 선원 관련 유관 단체장들이 참석한 가운데 흉상 제막식 행사를 개최한다.

한편 해양대 박한일총장을 대신해서 김종도 기획처장과 교무처장이 대신 참석했다. 해대 재학생들이 추모곡을 연주하고 분성 배씨 종친회장의 인사말과 참석자들의 헌화와 유족대표로 배동진사장의 인사로 1부 제막식을 마치고 2부는 유족들이 제사로 모든 행사를 마무리 했다. 아울러 고인약력은 창원시에서 출생하여 44년 진해고등해원양성소를 나와 대한해운공사 선장과 해군사관학교 교수등 바다와 관련된 외길을 걸어왔다. 한국최초의 국가공인 도선사로 74년 도선사협회 초대회장과 예선업체 흥해 설립 , 96년 제1회 바다의날 행사에서 동탑산업훈장 수상, 02년 해대 공학박사 명예졸업장, 06년 성균관대학 부관장등을 맡은바 있다.

아울러 배동진사장 지인인 서울대 한송 장경렬교수가 지은 비문에 ‘백절불굴 철석정신’으로 이에 맞섬으로써 인간의 가치와 의미를 우리 모두의 기억에 새기는 이들이 있는 것이다. 그들 가운데 한 분이 해옹이다. 휘는 순태요, 호는 해봉인 해옹은 분성 배씨 23대 세손으로, 1925년 2월 26일(음력 2월 3일)에 경남 창원군 토월리에서 취헌공 휘 재복과 전주 이씨 휘 남이의 삼남으로 태어났다.어려운 환경에서도 배움의 의지를 굽히지 않던 해옹은 진해고등상선학교에 입학한 것을 계기로 하여 우리나라 해운사에 깊은 발자취를 남기게 되었다.

한평생 바다를 떠나지 않은 ‘바다 사나이의 인생’
故배순태 명예도선사 대한민국 立志傳的 인물 재조명



해방이후 대한민국 해운산업 역사에서 故배순태 명예도선사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선박입출항에서 빠질수 없는 민간인 신분 외교관 역할로 외국선박이 국내 입항시 가장 먼저 손님을 반갑게 맞이하는 직업이 다름 아닌 도선사들이다.

일제 강점기부터 무역항에서 도선사 위치와 산업역할은 매우 중요한 직업중의 하나로 지금까지 자부심으로 맡은바 업무에 충실하고 있다. 해상직 선장 경험을 거처 해기사들의 로망인 導船士(도선사)들 명예와 자부심은 타 직업보다 매우 높다.우리나라 반세기 해운 역사에서 수많은 도선사가 역사의 현장을 지키고 지금은 현역에서 은퇴하고 이름만 남기고 한국도선사협회 친목단체인 ‘명예도선사’로 교류하고 있다.

東西古今(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우리나라 도선사들 도선실력과 업무 능력은 세계에서 가장 우수하고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해기사 꽃’인 도선사까지 가는 길목은 험난하고 수없이 많은 난관을 극복해야 비로소 자격증 시험 자격이 주어지는 제도로 선진해운 외국에서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어려운 과정을 거처야 한다. 해양 관련 학교 졸업과 선원교육을 마치고 일정기간 동안 해상직 선원으로 근무하고 6천톤급이상 5년간 선장 경험을 바탕으로 정부에서 시행하는 도선사 시험 볼 자격이 주어진다. 최소한 선원직을 20년정도 해야 한다는 결론이다.

따라서 도선사가 되려면 평균 나이가 40대후반에서 60대 초반까지 다양하다. 항만내 공공업무를 수행하는 도선사 자격증제도가 일반 직군인 변호사 의사 변리사 세무사와 달리 정년이 있다는 단점을 가진다. 해양부 관련법에서 도선사 자격증 취득후 만65세가 되면 자동적으로 면허가 상실된다. 다른 직종과 달리 도선사들은 정년이라는 불리한 규정으로 현장에서 일하고 싶어도 자격 상실로 떠나야 한다. 한국도선사협회 소속 전국항만에서 활동중인 도선사 숫자는 현재 250여명이다.


평생 모은 재산 부동산등 70억 상당 장학금 기탁
인천항 대형선 갑문 통과로 도선 실력 자타 공인


우리나라 도선사들의 실력이 월등해 일본 해운업계도 탐을 내는등 한국인 도선사를 수입하자는 여론이 지배적이다. 해방이후 수많은 도선사들이 배출되고 현장을 다녀갔지만 배순태 도선사 이름만 대면 국내외 선장들 세계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세를 남겼다.

인천항에서 처음으로 도선사 면허를 개업하고 서비스를 제공한 배순태도선사는 세계에서 유일한 갑문형태의 입출항 도선 업무를 능수능란하게 처리해 해운인 관계자 찬사를 받으며 최고의 도선 실력을 자타가 공인하고 있다.

1925년 경남 창녕에서 태어난 그는 현재 한국해양대학교 전신인 진해고등해원양성고 항해과를 45년에 졸업하고 그해 9월 조선우선 입사해 해상직 선원으로 승선 근무를 시작했다. 이어서 하선해서 48년 국립 부산수산대학 조교수와 해군사관학교 항해과 교수를 거처 52년 갑종선장 면허를 취득하고 대한해운공사에 입사했다.

육상에서 근무를 접고 원양선 선장으로 ‘바다 사나이’로 원래 모습으로 돌아갔다. 대한해운공사에서 선장 경험을 바탕으로 58년 인천항에서 도선사 면허를 취득하고 본격적인 도선사의 길로 한평생을 살아왔다. 70년 도선사협회 설립과 동시에 초대 회장으로 도선사 지위를 향상하고 권익을 도모하는데 일조했다.
인천항 갑문에서 도선서비스 최고의 실력을 자랑하는 그는 대형 선박 갑문 통과 좌우 공간이 1미터로 모두가 기피하는 도선 업무를 자청해서 갑문을 통과해 박수갈채를 받는 등 지금까지 수많은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93년 정년과 동시에 도선사 폐업까지 그가 남긴 선례와 일화는 도선사 세계에서 지금도 회자되고 있다.

도선사 업무 이외 교육과 장학 사업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평생 모은 재산 일부를 모교인 한국해양대학에 장학금과 부동산을 기부했다. 68년 명성학원 이사장과 고려대 경영대학원 한국해대 명예공학박사 취득등 만학에 남다른 애정을 보였다. 02년 해양대에 경기도 양평 부동산 70억원 상당의 재산 기부와 05년 해대 동남아유학생 장학금 기부(1천만원)등 후진양성에 관심을 보였다. 과거 어렵게 국고 장학생인 해양대학 승선학과 졸업후 해상직 선원생활과 육지에서 전문경영인으로 성장한 동문은 해운산업 발전에 관심을 가지고 후진양성 발전기금을 기부한 좋은 선례로 남아 향후 많은 귀감이 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도선현장에서 唯一無二한 최초 갑문통과 진기록 남겨
도선사 은퇴후 흥해 회장으로 예선업과 조선업 병행

고(故)배순태는 45년 11월 조선우선의 금천호(킨센마루, 이후 해양대학 실습선 반도호)에 첫 3등 항해사로 승선했다. 금천호는 일본에서 수리를 마치고 부산항에 귀항했을 때 홍순덕 선장이 일본 선장으로부터 접수하고 이때 배순태가 일장기를 하강하고 태극기를 게양하는 역사적 임무를 담당했다.

우리나라 최초로 선장과 선원 모두를 한국인으로 구성한 극동해운(주)의 국적선 고려호(총톤수 6,800톤, 적재톤수 10,680톤)는 52년 10월 부산항에서 고철 1,676톤을 선적하여 미국 포틀랜드에 양하후 원조물자인 소맥 8,236톤과 잡화 1,014톤을 싣고 53년 1월 7일 부산항에 입항했다. 고려호 선장에는 해군 준장인 박옥규가 차출되고 대부분 사관은 해군현역인 반면에 배순태는 민간인으로 3등 항해사로 승선했다.

배순태는 53년 6월에 대한해운공사 동해호의 선장으로 승선하여 태평양을 대권항법으로 항해하여 운항기간을 7일 단축하고 59년 인천항 도선사로 취역한 후 34년간 도선사로서 근무하는 동안 74년 한국도선사협회 창립 前 초대회장을 역임하는 등 한국도선사협회 창립과 협회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도선사로 근무하는 동안 동양최대의 인천항 제2도크가 준공(1974년 5월 10일)되었으나 도크운영의 안전을 위해서 외국의 우수한 도선사를 취역시켜야 한다는 여론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배순태 도선사는 관계당국과 인천시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갑문통과 시범도선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인천항 5만톤급 갑거 통과한 최초의 선박 사진공개
배순태 회장으로부터 기증받아…갑문 홍보관 전시중

인천항에 최초로 입항한 5만톤급 선박 사진이 대중에 공개된다. 인천항 역사의 한 페이지를 생생하게 담고 있는 이 사진은 현재 갑문 홍보관에 전시중이다.

인천항만공사는 1976년 6월 3일 인천 내항 갑문의 갑거를 통과한 최초의 5만톤급 선박 헥터(HECTOR)호 사진을 기증받아 갑문 홍보관을 통해 일반인들에게 선보이고 있다. 사진 기증자는 당시 도선사로 해당 선박에 올라 직접 입항을 지휘했던 ㈜흥해의 배순태(裵順泰) 회장이다.

1954년부터 58년까지 대한해운공사 소속 동해호 선장을 지내면서 해운업계에서 우리나라 사람으로는 처음으로 세계를 일주한 인물로 유명하고 1959년부터 인천항 도선사로 근무하다 93년 은퇴했다.

배회장이 기증한 사진은 37년 전 찍은 것이라 다소 빛이 바래기는 했지만 선박의 갑문 입거 당시 상황을 짐작하기에는 어려움이 없을 정도로 양호한 상태다. 갑문 5만톤급 갑거는 폭이 36미터로, 갑문운영세칙 상 32.3미터 폭의 선박까지 입거가 허용되고 있다. 헥터호의 선폭이 32미터였음을 감안하면 관계자들의 관심과 긴장감이 어느 정도였을지 짐작할 수 있다. 한편 사진을 기증한 배순태 회장은 인천 내항 갑문을 통과한 첫 번째 선박 여수호(3,800톤)는 물론 선폭이 32.34미터로 헥터호보다 더 넓은 아니카호(53,559톤), 인천항에 처음으로 입항하는 자동차전용선 노삭・타이샨호를 직접 도선하는 등 인천항의 굵직한 역사를 장식한 인물이자 한국도선사협회 초대 회장을 역임한 대한민국 도선업계의 산증인이다. 지난 13년 인천항만공사 김춘선사장(3대) 재임 당시 갑문홍보관에 별도의 공간을 마련해 배 회장의 기증 사진을 비롯한 기록 사진들을 일반인에 현재까지 전시중이다.



‘해봉 배순태상’을 제정 임기택 사무총장 첫 수상자
해기사 양성 위해 양평 임야 15만평 해양대 기부

76년 6월 22일에 수도권에 밀가루가 품절되어 농림부가 긴급 수입한 소맥 5만4천 톤을 만재한 선박이 인천항에 입항했으나 갑문이 수리 중이라 입거가 불가능한 상황이 발생한다. 당시 농림부와 교통부 및 항만당국과 해운관계자들이 대책을 논의하였으나 방법이 없었을 때 배순태 도선사가 도선을 자원해 갑문과 선박의 제원을 면밀하게 계산하여 갑문을 유유히 통과 양곡부두에 접안시켜 밀가루 파동을 예방하게 되었다.

평택항에 국내 처음으로 10만 톤급 LNG선박이 입항 한 1986년 당시에는 LNG선박은 위험선박으로 자칫 잘못하여 사고가 날 경우 반경 10km가 폐허가 된다하여 도선사들이 도선을 기피하였으나 배순태 도선사는 철저한 사전답사와 조류와 암초, 어장을 피해 LNG부두에 안전하게 접안시키는 등 도선사로 맡은바 임무뿐만 아니라 도선사들도 꺼려하는 어려운 도선을 치밀한 계획과 사전점검을 바탕으로 운항하여 도선사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다.

2002년 9월 해기사 양성을 위해 경기도 양평의 임야 15만평(당시 시가 70억원)을 한국해양대학교에 기부하고 동년 10월25일 명예공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도선사 은퇴 후 99년부터 흥해주식회사 회장으로 예선업과 조선업을 병행하며 평생 바다를 떠나지 않은 ‘바다 사나이의 인생’을 살다가 작년 4월 11일 향년 93세를 일기로 영면하였다. 배순태의 장남 배동진회장은 선친의 유지를 받들어 「해봉 배순태상」을 제정하였고, 2017년 11월 23일 임기택 국제해사기구(IMO) 사무총장을 첫 수상자로 선정하여 시상했다.


바다의 날 기념 ‘해기사 명예의 전당’ 헌정
국적선 최초로 세계 일주 운항 기록한 선장

해기사 명예의 전당 헌정 인물선정위원회(위원장 이권희, 이하 ‘선정위’)는 3월 14일 한국해기사협회 회의실에서 2018년 「해기사 명예의 전당」 헌정 인물 선정을 위한 회의를 개최한바 있다. 선정위는 추천된 총 2명의 후보자를 대상으로 개개인의 다양한 경력과 공적을 심도 있게 논의하고 최종 故 배순태해
기사를 만장일치로 최종 확정했다.

선정위원장인 이권희 한국해기사협회장을 비롯해 김종길 원로해기사, 김윤택 진해고등상선학교 동문회 회장, 임상현 한국도선사협회 회장등 11명이 참석했다.

「해기사 명예의 전당」은 우리나라 해운발전의 초석이 된 해기사들의 자긍심을 고취하고 해기 선원직업의 매력화 등을 위해 부산 태종대 공원 내(영도 등대 부근) 1,336㎡ 부지에 2009년 3월 6일에 설립되었으며, 2017년 현재까지 신성모, 이시형, 박옥규, 황부길, 신순성, 유항렬, 이재송, 윤상송, 석두옥, 김재곤, 정해춘, 김윤석, 윤영원등 총 13명을 헌정한 바 있다. 올해 헌정식은 5월 24일 유관단체 유족과 지인들이 참석한 가운데 부산태종대 등대공원에서 개최한다.




관리자
2018-04-20 16: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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