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항 도선사 故 해봉 배순태회장 5주기 추모식 행사

부산 태종대 해기사명예의 전당과 부곡 선영에서 가져

흥해 임직원 유가족 종친회 도선사협회장 해대총장 참석

배동진회장이 4월11일 오전11시 부곡 선영에서  추모식 5주년 인사말을 하고 있다.
배동진회장이 4월11일 오전11시 부곡 선영에서 추모식 5주년 인사말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 최초로 공인1호 도선사 면허자격증을 취득한 인천항 故(고)해봉 배순태회장(흥해 창업주)의 5주기 추모식이 부산 태종대 ‘해기사 명예의 전당’과 경남 창녕군 부곡면 선영에서 유가족과 종친회 대표, 양창호(KMI전원장)성결대학 특임교수, 조용화 도선사 협회장, 전종해 인천도선회장, 한국해대 도덕희총장 예선조합 김성호전무 인천지회 남광률 전무, 박관복부사장 회사 임원 관계자 지인등 약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행사를 가졌다.

4월10일부터 11일까지 1박2일정으로 진행된 부산 태종대 해기사 명예의 전당기념식은 배동진회장과 회사임원 관계자 참석하고 버스로 이동하여 창녕군 부곡면 선영에서 5주기 추모식 행사를 흥해(재단법인 해봉꿈이음장학재단)강철훈이사의 사회로 진행됐다. 고인에 대한 묵념과 17년 4월11일 영면한 해봉 배순태 도선사의 약력소개 헌주와 축문, 추모사 참석자 대표분향과 개별헌화, 추모곡연주등  인천 평택항 예선업체인 흥해의 박관복 부사장 소개로 이어졌다.

한국도선사협회 조용화회장은 추도사를 통해“ 생전에 회장님께서는 한국인 최초의 세계일주 선장 등 해기사로서 많은 업적을 남기셨으며, 특히 우리 도선사회에 잊지 못할 거대한 발자취를 남기셨습니다. 먼저, 도선사시험제도를 제대로 운영하도록 정부에 적극 건의하여 대한민국에서 국가고시로 합격한 최초의 도선사(9호, 1958년)가 되셨습니다. 이는 오늘날 대한민국이 공정하고 엄격한 시험선발 제도를 통해 자격 있는 우수한 도선사를 배출할 수 있는 주요한 시발점이 되었습니다.현장의 도선사로도 맹활약하셨습니다. 인천항에서 도선사로 활동하면서 어렵고 난감한 도선을 솔선수범과 도전의 정신으로 하나하나 성공하면서 이러한 공을 인정받아 제1회 바다의 날(1996년)에는 동탑산업훈장을 수상하셨습니다.”라고 강조했다.

조회장은 또한 “1974년 인천항 갑문 개통 당시, 안전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시험운전을 해야 했는데 우리나라 도선사를 신뢰하지 못하고 외국도선사를 초빙해 도선을 맡기자는 관계자들의 주장에, 한국도선사가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직접 나서 ‘여수호’의 시험도선에 성공한 것은 한국 도선사에 대한 신뢰를 한층 높인 의미 있는 일이었습니다. 이외에도 평택항 LNG 터미널의 9만 톤급 대형선박 첫 도선과 1988년 서울올림픽 당시 이목이 집중된 구소련선수단 선박을 도선하고 인천시의 최종 성화봉송 주자로 선정되기도 하는 등, 굵직굵직한 도선현장을 진두지휘하며 성공으로 이끌어냈던 이 모든 장면은 우리 도선 역사와 기술의 발전 그 자체라 할 수 있습니다.”밝혔다.

이어서 행사 참석한 한국해양대학교 도덕희 총장도 “ 대한민국 바다영토와 세력의 중요성을 항상 가슴에 간직하셨던 회장님은 바다의 장인이셨습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한 한국해운에서 해기사로서의 역할은 지대하셨습니다. 해방 전, 척박하고 열악한 우리나라 해운환경에서 고등상선학교를 졸업하신 훌륭한 선배 해기사님들께서 우리나라 해운의 초석을 닦은 결과, 오늘날 해운강국이 되었음을 해양인이라면 가슴으로 느끼고 있을 것입니다. 미래를 보며 항상 한발 앞장서셨던 회장님, 그리하여 우리나라 최초로 선장으로서 세계 일주를 하셨습니다. 해방과 함께 3등 항해사로서 일장기를 내리고 광복된 조국의 태극기를 손수 게양하셨습니다. 우리나라 최초 갑문 도선을 하셨습니다. 한국도선사협회 창립을 주도하셨습니다.그 밖은 많은 업적들도 있지만, 이 모든 업적들은 그 누구보다도 뜨거운 심장과 열정을 가지셨기 때문에 가능한 일로 여깁니다. 후손들을 위해 지금도 뛰고 계심을 느낍니다. 저는 멈출 수 없는 회장님의 심장 박력과 그 에너지를 듣고 피부로 느끼기 위해 저의 오감을 열어두고자 합니다.”라고 축도사를 했다.

배동진회장은 헌주와 축문을 하고 있다
배동진회장은 헌주와 축문을 하고 있다

배동진회장은 인사말에서 “광복직후 해기사 초년병 때 금천호에 게양했던 일장기를 내리고 태극기를 게양하는 역사적 임무를 수행하고 동해호 선장으로 오대양 칠대주를 횡단하는 파나마 수에즈운하 통과 한국의 마젤란이 되었다”고 엄숙하게 읽어 내려갔다. 특히 17년 연말 고인의 생전 유지를 받들어 ‘해봉 배순태상’을 제정하여 1회로 세계 바다 대통령 임기택 사무총장에게 수여하고 현재 5명에게 상을 수여했다. 18년 5월31일 바다의 날 기념으로 부산항 태종대 ‘해기사 명예의 전당’에 선정, 5월24일 한국해기사협회 주관으로 유가족과 부산지방청장 선원 관련 유관 단체장들이 참석한 가운데 흉상 제막식 행사를 개최한바 있다.

한편 분성 배씨 배동식 종친회장의 인사말과 참석자들의 헌화와 1부 5주기 추모식을 2부에서 인천예선 용남 전용구 전무이사 주관으로 추모곡을 연주했다. 아울러 고인 약력은 창원시에서 출생하여 44년 진해고등해원양성소(22기졸업)를 나와 대한해운공사 선장과 해군사관학교 교수 바다와 관련된 외길을 걸어왔다. 한국인 최초의 국가공인 도선사로 74년 한국도선사협회 초대회장과 예선업체 흥해 설립, 김영삼 정권의 해수부 출범 첫해 96년 제1회 바다의 날 행사에서 동탑산업훈장 수상, 02년 해대 공학박사 명예졸업장, 06년 성균관대학 부관장등을 맡은바 있다.

4년전 18년4월 11일 제1주기 추모식 및 제막식에서 배동진회장 지인 서울대 한송 장경렬교수가 지은 비문에 ‘백절불굴 철석정신’으로 이에 맞섬으로써 인간의 가치와 의미를 우리 모두의 기억에 새기는 이들이 있는 것이다. 그들 가운데 한 분이 해옹이다. 휘는 순태요, 호는 해봉인 해옹은 분성 배씨 23대 세손으로, 1925년 2월 26일(음력 2월 3일)에 경남 창원군 토월리에서 취헌공 휘 재복과 전주 이씨 휘 남이의 삼남으로 태어났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배움의 의지를 굽히지 않던 해옹은 진해고등상선학교에 입학한 것을 계기로 하여 우리나라 해운사에 깊은 발자취를 남기게 되었다.

흥해 임직원일동은  4월10일 오전11시 부산 태종대 위치한 해기사 명예의 전당에서 추모식을 가졌다
흥해 임직원일동은 4월10일 오전11시 부산 태종대 위치한 해기사 명예의 전당에서 추모식을 가졌다

故배순태 명예도선사 대한민국 立志傳的 인물 재조명

비문에‘백절불굴 철석정신’해운사 큰 족적 남겨

태종대 해기사 명예의 전당 및 창녕 부곡 선영에서 

한평생 바다를 떠나지 않은 ‘바다 사나이의 인생’

일제강점기부터 도선사 면허취득 약550명에 불과

지난 18년 4월11일 창녕부곡 선영에서 추모식 1주기 제막식에 이어 올해로 5주기를 맞아 흥해 임직원 유가족 종친회 지인등 관계자 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10일 행사 첫날 부산 태종대 해기사 명예의 전당에서 추모식에 이어 버스로 이동해 다음날인 11일 경남 창녕군 부곡면 선영에서 추모식 5주기 기념 행사를 가졌다.

이날 행사에는 양창호 성결대학 특임교수, 전종해 인천항도선사회장, 이혁식총무이사, 남흥우 천경인천지부장, 도덕희총장, 조용화회장, 남광률인천예선지부전무이사, 한국가스해운 김가영부사장, 김성호 예선조합전무이사, 전용구 용남전무이사, 김성준해대교수, 최석윤 해대교무처장, 신태하흥해고문등 지인들도 대거 참석했다. 흥해 박관복 부사장, 신무룡전무, 현철주 공무팀상무, 강철훈이사, 정성화기관장, 정구덕선장, 계열사 조선소 디에이치조선 전정선대표이사, 배창주 부사장, 명원석 관리상무등 행사를 이끌었다.

해방이후 대한민국 해운산업 역사에서 故배순태 명예도선사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선박입출항에서 빠질수 없는 민간인 신분 외교관 역할로 외국선박이 국내 입항시 가장 먼저 손님을 반갑게 맞이하는 직업이 다름 아닌 導船士(도선사)들이다.

일제 강점기부터 무역항에서 도선사 위치와 산업역할은 매우 중요한 직업중의 하나로 지금까지 자부심으로 맡은바 업무에 충실하고 있다. 해상직 선장 경험을 거처 해기사들의 로망인 導船士(도선사)들 명예와 자부심은 타 직업보다 매우 높다. 우리나라 반세기 해운 역사에서 수많은 도선사가 역사의 현장을 지키고 지금은 현역에서 은퇴하고 이름만 남기고 한국도선사협회 친목단체인 ‘명예도선사’로 교류하고 있다.

東西古今(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우리나라 도선실력과 업무 능력은 세계에서 가장 우수하고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해기사 꽃’인 도선사까지 가는 길목은 험난하고 수없이 많은 난관을 극복해야 비로소 자격증 시험 자격이 주어지는 제도로 선진해운 외국에서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어려운 과정을 거쳐야 한다. 해양 관련 학교 졸업과 해기사교육을 마치고 일정기간 동안 해상직 선원으로 근무하고 6천톤급이상 3년간 선장 경험을 바탕으로 최소 선원직 20년이상 배를 타야 정부에서 시행하는 도선사 시험 볼 자격이 주어진다.

따라서 도선사가 되려면 평균 나이가 40대후반에서 60대 초반까지 다양하다. 지금은 도선사 진출 연령이 매우 짧아졌다. 항만내 공공업무를 수행하는 도선사 자격증제도가 일반 직군인 변호사 의사 변리사 세무사와 달리 정년이 있다는 단점을 가진다. 해수부 관련법에서 도선사 자격증 취득후 만65세가 되면 자동적으로 면허가 상실된다. 다른 직종과 달리 도선사들은 정년이라는 불리한 규정으로 현장에서 일하고 싶어도 자격 상실로 떠나야 한다. 한국도선사협회 소속 전국항만에서 활동하는 도선사 숫자는 현재 약250여명이다.

한편 일제 강점기 시절인 1937년 (故) 유항렬 도선사 일제 치하 한국인 최초로 인천항 도선구에서 개업이후 45년 해방이후 현재 전국항만에서 도선사 면허를 발급받아 무역항에서 도선 업무와 고인이 된 명예도선사를 비롯한 정년 퇴직한 도선사가 불과 550명이라는 놀랍게도 적은 숫자로 알려 매우 이례적이다.

18년 바다의 날  기념  부산 태종대에  위치한 해기사 명예의 전당 헌정식 흉상 모습
18년 바다의 날 기념 부산 태종대에 위치한 해기사 명예의 전당 헌정식 흉상 모습

평생 모은 재산 70억 상당 한국해대 장학금 기탁

인천항 대형선 갑문 통과로 도선 실력 자타 공인

우리나라 도선사들의 실력이 월등해 일본 해운업계도 탐을 내고 한국인 도선사를 수입하자는 여론이 지배적이다. 해방이후 수많은 도선사들이 배출되고 현장을 다녀갔지만 배순태 도선사 이름만 대면 국내외 선장들 세계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세를 남겼다. 인천항에서 처음으로 도선사 면허를 개업하고 서비스를 제공한 배순태도선사는 세계에서 유일한 갑문형태의 입출항 도선 업무를 능수능란하게 처리해 해운인 관계자 찬사를 받으며 최고의 도선 실력을 자타가 공인하고 있다.

1925년 경남 창녕에서 태어난 그는 현재 한국해양대학교 전신인 진해고등해원양성고 항해과를 45년에 졸업하고 그해 9월 조선우선 입사해 해상직 선원으로 승선 근무를 시작했다. 하선해서 48년 국립 부산수산대학 조교수와 해군사관학교 항해과 교수를 거처 52년 갑종선장 면허를 취득하고 대한해운공사에 입사했다. 그러나 육상에서 근무를 접고 원양선 선장으로 ‘바다 사나이’로 원래 모습으로 돌아갔다. 대한해운공사에서 선장 경험을 바탕으로 58년 인천항에서 도선사 면허를 취득하고 본격적인 도선사의 길로 한평생을 살아왔다. 70년 도선사협회 설립과 동시에 초대 회장으로 도선사 지위를 향상하고 권익을 도모하는데 일조했다.

인천항 갑문에서 도선서비스 최고의 실력을 자랑하는 그는 대형 선박 갑문 통과 좌우 공간이 1미터로 모두가 기피하는 도선 업무를 자청해서 갑문을 통과해 박수갈채를 받는 등 지금까지 수많은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93년 정년과 동시에 도선사 폐업까지 그가 남긴 선례와 일화는 도선사 세계에서 지금도 회자되고 있다.도선사 업무 이외 교육과 장학 사업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평생 모은 재산 일부를 모교인 한국해양대학에 장학금과 부동산을 기부했다.

68년 명성학원 이사장과 고려대 경영대학원 한국해대 명예공학박사 취득등 만학에 남다른 애정을 보였다. 02년 해양대에 경기도 양평 부동산 15만평 상당의 재산 기부와 05년 해대 동남아유학생 장학금 기부(1천만원)등 후진양성에 관심을 보였다. 과거 어렵게 국고 장학생인 해양대학 승선학과 졸업후 해상직 선원생활과 육지에서 전문경영인으로 성장한 동문은 해운산업 발전에 관심을 가지고 후진양성 발전기금을 기부한 좋은 선례로 남아 향후 많은 귀감이 되고 있다.

흥해 박관복부사장은  해봉 배순태 도선사의  약력과   업적을  소개하고 있다.
흥해 박관복부사장은 해봉 배순태 도선사의 약력과 업적을 소개하고 있다.

도선현장에서 唯一無二한 최초 갑문통과 진기록 남겨

인천항 5만톤급 갑거 통과한 최초의 선박 사진공개

배순태 회장으로부터 기증받아…갑문 홍보관 전시중

해봉 고(故)배순태는 45년 11월 조선우선의 금천호(킨센마루, 이후 해양대학 실습선 반도호)에 첫 3등 항해사로 승선했다. 금천호는 일본에서 수리를 마치고 부산항에 귀항했을 때 홍순덕 선장이 일본 선장으로부터 접수하고 이때 배순태가 일장기를 하강하고 태극기를 게양하는 역사적 임무를 담당했다.우리나라 최초로 선장과 선원 모두를 한국인으로 구성한 극동해운(주)의 국적선 고려호(총톤수 6,800톤, 적재톤수 10,680톤)는 52년 10월 부산항에서 고철 1,676톤을 선적하여 미국 포틀랜드에 양하후 원조물자인 소맥 8,236톤과 잡화 1,014톤을 싣고 53년 1월 7일 부산항에 입항했다. 고려호 선장에는 해군 준장인 박옥규가 차출되고 대부분 사관은 해군현역인 반면에 배순태는 민간인으로 3등 항해사로 승선했다.

배순태는 53년 6월에 대한해운공사 동해호의 선장으로 승선하여 태평양을 대권항법으로 항해하여 운항기간을 7일 단축하고 59년 인천항 도선사로 취역한 후 34년간 도선사로서 근무하는 동안 74년 한국도선사협회 창립 前 초대회장을 역임하는 등 한국도선사협회 창립과 협회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도선사로 근무하는 동안 동양최대의 인천항 제2도크가 준공(1974년 5월 10일)되었으나 도크운영의 안전을 위해서 외국의 우수한 도선사를 취역시켜야 한다는 여론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배순태 도선사는 관계당국과 인천시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갑문통과 시범도선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인천항에 최초로 입항한 5만톤급 선박 사진이 대중에 공개된다. 인천항 역사의 한 페이지를 생생하게 담고 있는 이 사진은 현재 갑문 홍보관에 전시중이다. 인천항만공사는 1976년 6월 3일 인천 내항 갑문의 갑거를 통과한 최초의 5만톤급 선박 헥터(HECTOR)호 사진을 기증받아 갑문 홍보관을 통해 일반인들에게 선보이고 있다. 사진 기증자는 당시 도선사로 해당 선박에 올라 직접 입항을 지휘했던 ㈜흥해의 배순태(裵順泰) 회장이다.

1954년부터 58년까지 대한해운공사 소속 동해호 선장을 지내면서 해운업계에서 우리나라 사람으로는 처음으로 세계를 일주한 인물로 유명하고 1959년부터 인천항 도선사로 근무하다 93년 은퇴했다.배회장이 기증한 사진은 37년 전 찍은 것이라 다소 빛이 바래기는 했지만 선박의 갑문 입거 당시 상황을 짐작하기에는 어려움이 없을 정도로 양호한 상태다. 갑문 5만톤급 갑거는 폭이 36미터로, 갑문운영세칙 상 32.3미터 폭의 선박까지 입거가 허용되고 있다.

헥터호의 선폭이 32미터였음을 감안하면 관계자들의 관심과 긴장감이 어느 정도였을지 짐작할 수 있다. 한편 사진을 기증한 배순태 회장은 인천 내항 갑문을 통과한 첫 번째 선박 여수호(3,800톤)는 물론 선폭이 32.34미터로 헥터호보다 더 넓은 아니카호(53,559톤), 인천항에 처음으로 입항하는 자동차전용선 노삭・타이샨호를 직접 도선하는 등 인천항의 굵직한 역사를 장식한 인물이자 한국도선사협회 초대 회장을 역임한 대한민국 도선업계의 산증인이다. 지난 13년 인천항만공사 김춘선사장(3대) 재임 당시 갑문홍보관에 별도의 공간을 마련해 배 회장의 기증 사진을 비롯한 기록 사진들을 일반인에 공개 현재까지 전시중이다.

인천항 예선 용남 전용구 전무이사가 추모식 행사 참석하여  추모곡 연주와 노래 를 부르고 있다.
인천항 예선 용남 전용구 전무이사가 추모식 행사 참석하여 추모곡 연주와 노래 를 부르고 있다.

‘해봉 배순태상’을 제정 임기택 사무총장 수상자

해기사협회, 바다의 날 ‘해기사 명예의 전당’ 헌정

76년 6월 22일에 수도권에 밀가루가 품절되어 농림부가 긴급 수입한 소맥 5만4천 톤을 만재한 선박이 인천항에 입항했으나 갑문이 수리 중이라 입거가 불가능한 상황이 발생한다. 당시 농림부와 교통부 및 항만당국과 해운관계자들이 대책을 논의하였으나 방법이 없었을 때 배순태 도선사가 도선을 자원해 갑문과 선박의 제원을 면밀하게 계산하여 갑문을 유유히 통과 양곡부두에 접안시켜 밀가루 파동을 예방하게 되었다.

평택항에 국내 처음으로 10만 톤급 LNG선박이 입항 한 1986년 당시에는 LNG선박은 위험선박으로 자칫 잘못하여 사고가 날 경우 반경 10km가 폐허가 된다하여 도선사들이 도선을 기피하였으나 배순태 도선사는 철저한 사전답사와 조류와 암초, 어장을 피해 LNG부두에 안전하게 접안시키는 등 도선사로 맡은바 임무뿐만 아니라 도선사들도 꺼려하는 어려운 도선을 치밀한 계획과 사전점검을 바탕으로 운항하여 도선사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다.

2002년 9월 해기사 양성을 위해 경기도 양평의 임야 15만평을 한국해양대학교에 기부하고 동년 10월25일 명예공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도선사 은퇴 후 99년부터 흥해주식회사 회장으로 예선업과 조선업을 병행하며 평생 바다를 떠나지 않은 ‘바다 사나이의 인생’을 살다가 17년 4월 11일 향년 93세를 일기로 영면하였다. 배순태의 장남 배동진회장은 선친의 유지를 받들어 「해봉 배순태상」을 제정하였고, 2017년 11월 23일 임기택 국제해사기구(IMO) 사무총장을 첫 수상자로 선정하여 시상했다. 이후 김인현교수 양창호교수 심춘희교장 박인호대표 지금까지 5명에 대해 해봉 배순태상을 수여했다.

한편 해기사 명예의 전당 헌정 인물선정위원회는 3월 14일 한국해기사협회 회의실에서 2018년 「해기사 명예의 전당」 헌정 인물 선정을 위한 회의를 개최했다. 선정위는 추천된 총 2명의 후보자를 대상으로 개개인의 다양한 경력과 공적을 심도 있게 논의하고 최종 故 배순태해기사를 만장일치로 최종 확정했다. 선정위원장인 이권희 한국해기사협회장을 비롯해 故(고)김종길 원로해기사, 김윤택 진해고등상선학교 동문회 회장, 임상현 한국도선사협회 회장등 11명이 참석했다. 5월24일 헌정식에는 한국해양대학교 박한일 총장, 부산지방해양수산청 박광열 청장, 김종길 前 해운국장, 국립해양박물관 손재학 관장을 비롯한 해운관련 기관·업계 관계자, 유족 및 협회 임원 등 150여 명이 참석한바 있다.

「해기사 명예의 전당」은 우리나라 해운발전의 초석이 된 해기사들의 자긍심을 고취하고 해기 선원직업의 매력화 등을 위해 부산 태종대 공원 내(영도 등대 부근) 1,336㎡ 부지에 2009년 3월 6일에 설립되었으며, 2018년 현재까지 신성모, 이시형, 박옥규, 황부길, 신순성, 유항렬, 이재송, 윤상송, 석두옥, 김재곤, 정해춘, 김윤석, 윤영원, 배순태등 총 14명을 헌정한 바 있다.

한편 흥해는 국내 두번째로  5천마력급 LNG추진선 예선  골드캐슬을 오는 5월에 진수식을 개최한다.  국내 최초 LNG추진선은 인천항 한국가스해운에서 5천마력급 송도호를  지난해 10월 투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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